<소프트스킬>,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괴물을 만드는지

Posted on Jan 3, 2020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러두고 싶다. 내게 <소프트스킬>1은 매우 재밌게, 유용하게 읽은 책이었다. (2016년에)

이 이야기는 사실 커뮤니케이션스킬, 소프트스킬을 권장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나오는, 또한 그런 정말 중요한 것이 어떻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이상한 괴물을 옹호하기 위해 변질되어 쓰이는지에 대한 것이다.

<사회생활>, <원만함>에 대해

나는 자라오며 계속해서 잔소리를 들어왔다. 말해주는 사람들은 내 아버지와 몇몇 친척 형, 주변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도 그런 말들을 새겨 듣지 않았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조언들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했겠지만, 내가 거부한 조언의 종류는 <원만함>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가 거부하는 종류의 <원만함>의 요구는, 다른 한가지 요구조건이 따라 붙는다. 그걸 말하는 사람이 사실은 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살아온 방식과 익혀온 사회적 관습과 달라서 당혹스러워서 내게 요구할 때 뿐이었다.

나는 의외로 예의가 바르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스팸전화를 걸어온 상담사에게 예의 바르게 거절하기, 미친새끼처럼 별 이익도 없이 쓰레기 같이 운전하지 않기,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사회의 익명으로 걷고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고 살아가기. 그리고 가능하면 원만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원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공무원이나 군인, 항공기 파일럿, 은행원 같은 사람들이 원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재밌게도 이런 사람들은 기대되는 상황에는 원칙주의자가 된다. 주로 자기에게 책임소지가 생길 상황일 때이다.

하지만 자기 상관에게 싫은 소리, <사회생활>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 그리고 다시 역으로 책임소지가 생길만할 때는 원칙을 비틀어 이용한다.

상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시점을 놓치도록 선후배 관계, 위계질서, 사회생활에 대해 고도로 훈련된 항공기 파일럿이 말도 안되는 그런 이유로 추락시켰다.2

책임을 지기 어려워 책임소지를 놓고 탁구 게임을 하면서, 수백명이 탑승한 여객선을 침몰시키고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된 구조는 물론 책임을 물기 싫어함, 원만함만을 추구했다.

치매 노인에게, 원금 손실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는지도 알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에게, 또한 투자경험이 없는 노인에게 투자상품을 가입하도록 권유한다.3

당신도 오늘 이런 풍경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스팸 전화로 대출권유, 신용카드 발급권유, 보험가입 권유 등등. 사실 권유가 아니라 강요에 가깝지만. 전화상담사는 자신의 실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그걸 가입해서 내 신용평가점수나 내 현금지출에 대해서는 전혀 부각시켜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고도로 이런 사회분위기에 맞춰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가는 이 분위기와 경제구조를 떠올리기 이전에 그들이 짜증나고 싫어진다.

어른의 사정, 그리고 그것은 사실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

원만함, 사회생활에 능숙함이 어떤 문제인지 말하고 싶다. 그 원만함이란 말은 굳이 '안해도 될말을 해서' 문제를 만들거나 손해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종종 그 안해도 될말이 사실은 공정하기 위해서, 정직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말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문제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참 멋지게도 이런 특성이 무엇이 공정함, 정직함인지 알고 깨닫지 못하고, 그 가치를 사회에서 냉대하고 비웃는다. 반면 이런 원만함, 사회생활, 책임을 전가하기가 <어른의 방식>이라는 우스운 생각이 뿌리가 깊다. 어른의 정의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당당하게 짊..이 아닐까.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한 개인이, 한 노동자가 짊어지기 어려운 것을 과한 것을 책임지우고, 더욱이 책임이 없는 이를, 누군가 높은 자리에 계신 책임을 정말 져야할 분이, 그 책임을 떠넘기고 뒤집어 씌워 보여주기식으로 희생양 삼기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빨갱이로 몰아가 죽이기, 지역감정, 진보도 다 썩었다, 등등 시대를 바꿔가며 그 모습이 얼마나 추했었는지 우리는 지켜보지 않았던가?

한국 사회에서 정직하고 공정하게 살기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조금씩은 내가 희생할 수 있을만큼은 그런 가치를 깨달아 지켰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쩌면 당신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무능한데 선동하고 추하게 행동하고 실은 당신이 일하지 않으면 자기도 이득볼 수 없는 주제에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에 대해 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어떤 사람 대신에.

<세련됨>과 <능숙함>에 대해

어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련됨>, <능숙함>을 익혀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당당하지는 못한 어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한다. 그것도 별로 당당하지 못한 이유들 때문이다.

주로, 자신이 어리숙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하여 쉽게 이용하고 등쳐먹고 싶은 대상, 그러기 쉬워보이는 청년에게 흔히 이런 말을 한다면, 사실은 그 의도가 길들이기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열을 올리며 그런 이야기를 강요하며 세뇌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자존감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고.

정말 착취하려거나, 자기 알량한 자존감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렇게들 행동하는 30대 이상의 한국 아저씨들을 많이 봤다. 나도 그럴지도 모르고. 내가 20대 사회초년생일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너무 투명해서 피곤함을 느낀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들이 말하는 원만함, 사회생활의 기준은 강요하는 이의 자기 기분의 만족, 혹은 길들이기 쉽게 만들기에 정말로 충실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논법을 통해서 저임금 노동, 말도 안되는 노동조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게 문제로 제기 되어도 오히려 역성을 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디가서 그렇게 사회생활하면 누가 받아주겠느냐 등등.

이러한 <세련된> 어른들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에 정말 충실하다. 그래서 남을 공격하고 비난할 때도, 절대 자신이 공격했다는 책임을 지기 싫어서 빙빙 돌리고 베베 꼬아서 말한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도, 대체 왜 지금 시점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건지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내가 미성숙한 아이였을 때, 때와 상황을 잘 모르는 주제에 그냥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중얼거릴 때와 같이 말하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 그것도 30대~70대 사이의 성인 남성이 그렇게들 말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래서 덕분에 상대는 어떤 대답도 하고 싶지도, 대답할 문맥도 아니어서 대화, 논의는 아무런 결론도 없고, 성과도 없이 끝난다. 아! 물론 성과는 있겠지. 그걸 중얼거린 바보는 자신의 감정이 어느 정도는 만족했을거고, 자기가 뭔가 대단히 세련되었고 지적이라는 착각을 충족했을테니까.

이런 탓에, 사회에 그렇게도 '당신이 내 말을 오해했네,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네',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가 많고 문맹률도 최저인 나라에서 너무할 정도로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 이유와 그런 오해를 조장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신기할 정도다.

보통 이런 <어르신>들은 상대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이고,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별 이득도 안될 당연한 것들을 생색내거나 말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이 없는 조건을 내걸거나, 그래서 협상을 끝까지 이뤄내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도 그 협상이 어째서 이뤄지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또 그냥 상대가 어리숙해서 그런다며 탓한다. 정말 어리석고 세상물정을 모르는건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을 너무 여럿 봤다. 당연히 내가 수락할 이유도 없는 일이나 조건을 내걸고서 생색을 내거나, 내가 당연히 감정도 없어서 그런 말을 해도 당신의 말을 따를거라고 착각하는 멍청함까지 갖춘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그런데도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이 떠드는 성공은 커녕 시간의 뒷켠으로 사라져갈 때마다 나는 세상이 그래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되새길 수 있다.

정말로 유독한 부류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세련된 화법, 외교적 방법, 정치적인 감각, 커뮤니케이션 스킬, 소프트스킬을 자신의 강점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그에 곁들여서, 나나 타인의 그런 부분이 얼마나 형편 없는지도 함께 강조해서, 자신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봐온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스킬은 커녕 정치적, 외교적 감각은 커녕, 기본적인 도덕, 양심, 심지어 자기가 오래 일해온 분야에 대한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었다.

오직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냥 세련된 화법이라고 생각하는 잔재주로 그걸 치장하기만 열심이고, 남을 잘못도 없는데 뒤집어 씌워서 자신을 강조하고 싶어하며 어떻게든 남을 착취하고 또 그걸 착취하는걸 자기 상급자에게 갖다 바쳐서 이익을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뿐이었었다.

그들이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맞고 틀림보다 조금 논쟁에서 져주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가장 남을 조종하려 노력하고 있고,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리거나 하는 식으로 열심이었던 이들이다. 글쎄, 정말 지혜롭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그래서는 절대 안될 일들일거 같다. 차라리 논쟁에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남을 음해하거나 하지 않는게 더 마음을 사는 쪽에 세련되고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자기를 논쟁에서 기분 나쁘게 했음으로 앙금을 품는 사람들이, 자기를 음해를 하는걸 사회생활이니 어쩔 수 없지라며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더 정신병자들 같다.4

후자가 훨씬 유독하고, 조직, 회사,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걸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그래놓고서 제정신이어서, 자신의 정신건강, 육체적 건강, 그리고 경제적 이익 등 모든 정상적인 판단력으로 떠나는게 맞는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린 이들을 탓하고 욕한다. 재밌다.5

개발자 농담과 길들이기, 이를 돕는 사람들과 개발자 자신에 대해

가끔 나는 개발자 농담이 사회현상이라기 보다는 경영하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동작하지 않나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개발자들의 이익이나 그런걸 보통 다른 부류는 시기를 하는데 그걸 경영하는 측은 편을 들어주지 않아야 다른 쪽에 균형도 맞출 수 있고, 또 편가르기를 해놓고 서로 융화하지 않아야 모두 조작하기 쉬울거 같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개발자 개개인에 대해서도 흔히 말하는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그런 비아냥, 농담을 던져서 자존감을 낮추고 조종하는 것도 방안이리라 생각한다.

또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런걸 알아서 진상하고 갖다바치려 노력하는 위에 말한 유독한 사람들의 부류도 있을 것이다. 재밌게도 정말 평범하고 흔하디 흔한 전형적인 모습일거라 나는 상상한다. 의도적이건 어느새 그렇게 흘러갔건간에 말이다.

사실 정말로 개발자 자신들이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정말로 있기는 하다. <개발자 놀이>에 충실해서, 자신이 개발자라는데에 너무나 감격해서 그 역할에 몰입이 심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능력이 있지도 논리적으로 말하고 생각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개발자가 아닌데, 개발자 역할극을 즐기는 사람일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재밌게도 정말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위에 말한 그런 낚시에 걸려들어 비슷한 부류끼리 일을 하게 된다. 흥미롭다.

그렇지 않은 개발자들도, 사실 흥미롭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 계발이라고 시간을 더 투자해서 공부를 하고, 나아가서 그 공부의 주제영역, 그 외연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스킬에까지 다다른다.

소프트스킬,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주체로서 어디까지 학습하고 어느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하고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개발자의 역할을 계속해서 늘려나가야만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나는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개발자는 더 집중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하고, 거기에 커뮤니케이션스킬, 소프트스킬을 갖춘이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개발자가 진정 <프로페셔널> 해야 한다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무조건적으로 남들에게 소통을 하고 남들이 말도 안되는 요구나 대화를 걸어와도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고 개념을 확장해나간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프로페셔널>은 어쩌면 아예 다른 직업일 것이다. 도메인 전문가나 도메인 전문가, 현업과 대화하며 이를 요구사항으로 정제하는 인터뷰어, 혹은 당신들이 그렇게도 도대체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프로젝트 매니져들.

그 프로젝트 매니져, 혹은 프로젝트 어시스트들이 해야 하는 일이, 다른 사람과의 중간 대화를 해주는 역할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문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작 우스꽝스러운 구조, 그러니까 프로젝트 매니져가 개발자의 보스가 되어서 그냥 압박만 주는 사람으로 통념적으로 잘못 이해되고, 또 그게 뭐여야 하는지 고민도 없이 그 통념에 따르는 회사의 어눌함, 혹은 그런걸 맘껏 이용해 뭐가 됐든 알아서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가짐이건, 등등으로 프로젝트 매니져가 사실 개발자들에게 자신의 직분과 책임을 떠넘긴다. 사실 자신이 현업 인터뷰를 잘하고 그걸 정제해서 요구사항으로 만들고 관리하는게 당연함에도 그걸 개발자의 탓을 하며 떠넘긴다.

정말 신기하게도, 위에도 언급했지만, 개발자들은 자신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해서 다른 전문직업군처럼 활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서인지, 자신을 더욱 능동적으로 착취 당하기 위해 더욱 자기계발을 하고 자신의 기능을 늘려만 나간다. 그것도 같은 값에 자신의 노동을 팔기 위해서 처절하게 자기 학습을 늘려나간다. 다른 직업이었다면,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 받는 것을 반대하고, 또 그런 것을 요구 받지 않아도 자기 직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부당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고 공정한 일이다. 그럼에도 개발자들은 자진해서 자신들의 몸값과 기능의 균형을 깨가며 싸게 더욱 더 많은 기능을 탑재해서 노동 시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런 압력과 분위기는 개발자들이 모인 SNS, 커뮤니티에 팽배하다. 소프트스킬이 중요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고, 또 새로운 기술이 뭐가 어떻고.6

위에서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개발자와 같은 직군을 어리숙하다고 보고, 말도 안되는 제안, 어린애로 무시하는 내용의 제안 등을 내걸고 그걸 수락할거라 착각하는 주된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개발자 역할극에 심취해 그걸 수락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게 이런 분위기로 달려왔으리라.

어쩌면 개발자들은 노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은 가장 노조가 필요 없다고 착각하는 부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발자 농담을 하고, 개발자를 그렇게 여기고, 또 정말로 자기 자신의 몸값이 계속해서 떨어질텐데도 말이다.

설치시 필요사양 / Minimum Requirements

소프트스킬, 커뮤니케이션 스킬, 소통 등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기, 높은 사람이 되어서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양을 찾지 않는 책임감과 도덕성, 그리고 그런 사람을 따르고 정말 유해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밀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모습일 것이다. 오히려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익을 지키고, 부당함이 없어도록 하고, 잘못된 일이 바로 잡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렇기 위해서 개발자 자신들이 단순히 취미로서 일이 좋아서 하는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서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주체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게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건강하게', '지속가능하게'라는 말을 그마저도 타성적으로, 그걸 자기계발의 연장으로 인식한다. 물론 건강을 위해,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개개인이 해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이 그런 운동을 하는 시간이나 체력을 허락하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고, 그렇게까지 또 다른 형태의 자기 계발의 투자를 강요 받는다면 더 사회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정직함, 공정함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아야 제대로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능숙함, 세련됨은 그 위에 세워져야 바른 모양이겠지.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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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은행들의 탐욕…79세 치매노인도 졸지에 '공격투자형' 그 이후에 어느 정도 많이 복구와 보상이 있었던걸로 나는 알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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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좋아했던 책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틀린 기술적인 자기 주관을 자랑스럽게 설파할 때, 아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하면서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도 해봤다. 알아서 눈치채고 그만두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런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걸 영원히 속아줄거라 착각하는거 같다.

5

<삼국지>, <마키아벨리>를 정말들 좋아한다. 자기가 조조나 제갈량, 영웅, 군주나 지략가 등등이라고들 착각하지만, 그정도는 커녕 당장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당연히 제안할 것과 어떻게 예의를 갖추는게 중요한지도 이해하지 못하며, 현실인지능력도 떨어진다.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읽었는지, 머릿 속에 남은 생각이나 교훈이 뭔지 너무도 유치할거 같아서 묻고 싶지도, 이에 대해서 대화하기 두렵다. 하지만 그걸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는 해서 곤란하다면, 삼국지 등을 읽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게 차라리 속이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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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개개인이 속한 부득이한 경제적 사정, 상황에 의해 직업을 구해야만 하니, 또 다르게는 더 그런 삶의 방식을 지속하고 싶은 욕심에 그런 비용을 제공하는 직장을 구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겠지 생각한다.